작성일 : 13-09-13 20:48
몽당치마-림원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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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별의시인
 조회 : 8,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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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림원춘,1937--)1937년12월15일(음력)룡정시 덕신향에서 출생.
1956년 연변제2고중,1960년 연변대학 졸업.
1960년부터 연변인민방송국 문예부 편집,기자
1982년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에 전근,직업작가로 활약.
1958년 처녀작 단편소설<쇠물이 흐른다>로 문단 데뷔.
단편소설《꽃노을》-전국제1차소수민족문학상(1980년)
단편소설《몽당치마》-1983년 전국우수단편소설상 1984년 제2차전국소수민족문학상. 연변작가협회 성립 50주년 특별공헌상 (2007년 4월 )
단편소설집《꽃노을》(1980년),《몽당치마》(1984년),중편소설집《눈물젖은 숲》
(1995년),장편소설《우산은 비에 운다》(2002-2003년)를 출판.
너울을 쓰고 이씨 가문의 문턱을 넘어서는 그날까지도 나는 그 여인을 본적이 없었다. 사촌만 해도 스물넷이나 된다고 시아버님께서 자랑삼아 말씀하시더니 친척들이 너무 많아서 그 여인을 몰라봤는지 모르겠다.
가계가 양반의 후예라서 그랬던지, 아니면 지체가 이만저만 아니여서 그랬던지 시집에 모인 친척들은 많기도 했다. 얼핏 스치는 눈어림으로도 몇십명 잘될상 싶었따. 그속에서도 나는 그런 여인을 본적이 없었다.
이씨네 가문엔 친척들이 많기도 했다. 첫날 색시라 나는 부끄러워서 낯을 들지 못하면서도 걱정스런 마음을 가라앉힐바 없었다. 기쁜 마음은 한이 없지만 시름거리도 그에 못지 않았따. 시름거리란 다른것이 아니였다. 본가집 살림 궁하다보니 이튿날 아침 친척들에게 올릴 례단을 남들처럼 많이 준비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 여인과 같은 그런 여인은 해임수에 넣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군일이 생길때마다 좋소 궂소 하고 들이밀쭉 내밀쭉 하는것도 친척이요 잘했소 못했소 하고 얼굴을 붉히는 것도 친척이니 말이다. 다른 손들에게서야 극상해서 잘 차렸소 못 차렸소 잘 먹었소 못 멋었소 하는 소리로 끝을 보지만 친척들은 입술에 말을 발라가지고 두고두고 옛말을 하게 되니 기실 반가운것도 친척이요 무서운 것도 친척인셈이다. 지어 인사차례 마저 내가 받을 절을 네가 먼저 받았다 네가 받을걸 내가 받았다 하며 노염내고 돌아앉게 되니 까딱하면 말썽이요 지떡하면 당장 떠난다는 판이라 기뻐하는것도 친척이요 곤대질하는것도 친척인 법이다. 하물며 한다 하는 이씨 가문의 맏며느리로 들어서는 내가 예단감을 푼푼히 준비하지 못했으니 뒤가 무겁지 않을수 있겠는가.
중략....
나는 가슴이 후두둑 해났다. 삼일까지 보고 간다는것을 번연히 알고 있는 남편이 애를 띄우다니? 웬간한 일이 아니면 그럴 남편이 아니었다.
나는 제 귀를 의심했다. 꿈결에 들은 소리만 같았다.
「아버지 문제가 해결됐어요. 어제 시공업국에서 두 사람이 우리집에 찾아와서 아버지가 억울한 루명을 벗었다지 않겠어요? 다시 공업국장으로 올라간대요. 래일 모레 자동차를 가지고 짐 실으로 온다면서 짐을 꾸리라더군요. 그래서 찾아왔어요!」
「아유-이게 꿈이냐 생시냐? 형님! 흑흑흑…」
나는 가문 잔치라는것도 잊고 동불사 동서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때까지 참고 참아오던 눈물을 동불사 동서의 앞가슴에 쏟았다. 그저 울고만 싶었다. 기뻐서 울고 만 싶었다. 동불사 동서도 내 머리에다 얼굴을 대고 흑흑 흐느꼈다.
「슬퍼도 눈물이요 기뻐도 눈물이라더니 말 그른데 없구나. 자—우리 집안의 쌍중 경사로다. 이 사람 며느리 술을 붓게!」
동불사 동서는 나의 손을 끌고 일어서더니만 눈물을 씻을 생각도 않고 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소리쳤다. 나도 덩달아 춤을 추었다. 동불사 동서는 춤을 추면서 귀맛을 돋구는 그 바스음성으로 노래가락까지 뽑았다.
나는 그날 오후차로 동불사를 떠나게 되었다. 역으로 나가기전에 동불사동서는 조용히 나를 불러 앉혔다.
「그 옷을 벗어놓고 이 치마저고리르 갈아입고 가오.」
동불사 동서는 내가 만들었고 내가 례단으로 받은 곤색데트론 치마저고리를 내놓으면서 말했다.
「이때까지도 이걸 입었을라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어요?」
「입소. 동서가 입는걸 내 눈으로 보고싶소!」
동불사 동서는 며느리를 앞에 둔 시어머니처럼 나를 정겹게 바라보며 희망과 기쁨의 미소를 담았다. 그 미소는 보일까 말까 하는 눈가장 자리의 실주름을 타고 온 낯에 흘렀다. 하지만 그 미소는 되려 체 흘리지 못한 나의 눈물을 몽땅 끄잡아 올리고 말았다. 친어머니에게서만 오는 그런 따스한 정이 가슴을 파고 흘렀던 것이다.
동불사 동서는 통쾌하게 웃었다. 웃으면서 눈물방울을 땅에 떨궜다.
나는 친척들의 융숭한 환송을 받으며 차에 올랐다. 내가 이씨 가문에 발을 들여놓은후 잔치집으로 다니면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환송이다. 이제 그들은 시내에 있는 우리집으로 문쪽이 다슬게 찾아들것이다. 물론 조양천 동서가 첫 사람으로 들어설것이고…
나는 눈에 보이지 않을때까지 손젓는 몽당치마-동불사 동서에게서 눈을 데지 않으며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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