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윤동주(1917~1945)는 시집 한 권을 남기고 스물여덟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일한 시집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이 시집의 이름이 원래 `병원(病院)`이었다면 어떨까.
일본인 저술가 다고 기치로(62·사진)가 쓴 윤동주 평론집 `생명의 시인 윤동주`가 한국어로 최근 나왔다. 다고는 전직 NHK 프로듀서로 윤동주를 30년 동안 연구한 전문가다.
1995년 그가 NHK에서 일할 때 KBS와 함께 윤동주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윤동주, 일본 통치하의 청춘과 죽음`을 제작했다. 그가 발견한 육필 시집 원고에 `병원`이라고 한자로 썼다 지운 흔적이 눈에 띈다. 제국주의 일본이 좀먹은 병든 영혼을 안식하는 공간이 윤동주에게는 원고지뿐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윤동주는 병원에 갇혀 있지 않고 한 걸음 더 내디뎠다. 그가 `병원`을 완성한 것은 1941년 11월 5일이었는데, 약 보름 뒤인 11월 20일 `서시`를 첫머리에 넣는다. 또한 윤동주는 마지막 시 `별 헤는 밤`에 4행을 추가한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시집의 처음과 마지막에 추가한 말들은 죽음에 굴복하지 않는 의지를 말하는 듯하다. 다고에 따르면 이때 시집의 이름 또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바뀐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병원을 나와 밤하늘 별로 나가는 윤동주의 정신 세계는 처절함 그 자체다. 흐릿하면서 빛을 잃지 않는 별을 보고 생명과 희망을 윤동주는 느끼지 않았을까. 밤하늘의 심연에 들어선 뒤에야 빛나는 별처럼, 윤동주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영원히 살았다.
"윤동주가 상심과 고통에 짓눌려 스스로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그 가슴은 한없이 고독하고 절망에 잠겨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좌절을 딛고 일어서듯 윤동주는 눈을 바로 뜨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광기의 시대에 오히려 더욱더 우주의 신비와 진실을 보려고 했다." 다고는 이렇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