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백산지역에는 력대로 부터 여러민족들이 번갈아가며 살고 있었는데 현재는 주로 조선족, 한족, 만족들이 잡거해있다. 장백산은 조선민족의 성산으로, 만족의 발상지로 세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동북변강을
가로 질러 이어진 장백산은 산봉우리가 높고 수림이 밀집하며 토질이 비옥하여 중국의 유명한 인삼생산지이고 또한 인삼이야기의 고향이라고 할수있다. 인삼은 숙근이 사람모양처럼 생겼으며 매우 높은 약용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자고로 부터 사람들은 인삼에
한해 특수한 예술성을 부여해 주었다.특히는 장기간의 세월을 거쳐 장백산 인삼으로
인해 고착된 인삼문화는 농후한 지방특색을 구성하고 있으며 대중들의 생산과 생활속에 깊이 뿌리내렸다.장백산지역 여러민족의 인삼문화를 고찰해보면 그속에는 신앙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발견할수 있다.아래에 한족,만족,조선족의 인삼캐기습속에 서 존재하는 토속적인 신앙에 대해 해석하려 한다.
1.인삼의 신비화
인삼은 약용가치가 매우 높은 약재로서 <백초의 왕>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중국동북3대보물의 한가지이다. 인삼은 산삼이라고도 하는데 다년생 초본식물이다.수명은 최고로 400여년이 된다.지금으로부터 6000만년전에 인삼이 생겨났고 태항산맥과 태백산맥이 인삼의 발원지이다. 야생산삼은 해발200-1000메터높이 활엽홍송림이나 활엽잡목수림속의 해빛이 잘 들지않고 비를 피할수있는 곳에 많이 생장한다.
인삼이 어떻게 사회문화와 접목되였는지에 대해서는 인삼의 약용가치로부터 터득할수 있다.인삼은 그 신기한 약효로 하여 력대의 제왕들이나 사대부계층에서 특별히 총애하는 보물로 되였으며 대중들속에서 신비한 <생령의 뿌리>(生灵之根) 로 널리 알려졌다.이는 인삼문화의 형성에 촉매적인 역할을 하였다.
중국에서는 벌써2천여년전에 인삼을 발견하였었다.중국 최초의 약물문헌인 <신농본초경>에서 인삼의 공능에 대한 기재를 볼수있다.인삼은
주로 오장을 보하고 마음과 정기를 안정시키며 <마음을
활짝 열리게 하고 지력에 유익하며 오래 복용하면 건강장수 할수있다.> 오보(吴普-중국의
명의 화타의 제자)가 말하기를 <뿌리에는 머리,발,손 등이 있어 사람의 모양을 방불케하며 … 상당과 료녕에서 많이 난다.> 이 기록에서 당시에 이미 장백산지역에 인삼이 많이 난다는것을 알수있다.
동북인삼의 리용에 대한 력사문헌기록은 <태평여람>(太平御览)에서 저술한 료서 전연왕 모용(辽西 前燕王 慕容)<여고화서>(与顾和书)에서 보이는데 <오늘 인삼 10근을 보내왔다.>는 기록이 있다.력사기재에 의하면 발해국시기에 인삼을 중원제국에 헌납하는 조공품으로 삼았다고 한다.<발해국기>(渤海国记)라는 문헌기재에 따르면 인삼을 조공했다는 기록이 두번 보인다.<애왕25년 2월,소경직의 대신을 당나라에 파견하여 인삼,잣,곤포 등을 헌납했다>고 기록하였으며 <애왕26년에 진림이라는 사신을 두목으로 116명이 당조에 파견되여 인삼,곤포,백부자,호피 등을 진상했다>고 한다.그리고 일본과의 교류에도 인삼을 례물로 삼아왔다고 한다. 만족의
전신인 녀진족은 송화강이동, 압록강, 장백산이북에 거주하였으며 동쪽은 바다에 이르렀고 북쪽은 실위(室韦)의 땅에 린접해있었다. <거란국지>-<저번기> (契丹国志-诸蕃记)의 기재에 의하면 이 광활한 지역에서<땅에는 산림이 무성하고 삼과 곡식의 경작에 유리하며 토산품으로는 인삼, 밀랍, 북주, 생금, 세포, 잣, 백부자
그리고 여러종류의 진기금수가 많이 난다.> (地饶山林,田宜麻谷,土产人参,蜜蜡, 北珠,生金,细布,松实, 白附子, 以及各种珍禽异兽。) 토산품에서
인삼이 첫손꼽힌다.또한<녀진족은 북주,인삼,잣,백부자, 밀 랍,베천 등
물품을 거래한다.>는 기록이 있다. 인삼은 녀진족의 중요한 무역특산품인것이며 인삼채집은 녀진족의 주요한 생산활동의 한가지였던것이다.
인삼의 신비한 약효가 전해지면서 사대부계층에서는 인삼을 상등의 선물로 서로 주고받고했다고
하며 문인들의 붓끝에서 <신초>로 묘사되였다. 그리고 백성들속에서는 인삼은 신기한 령물로 간주되여 민간전설로 전해지기도 하였다. 이로하여 인삼은 진귀한 약재로 인간생활에 널리 활용되면서 신비한 색채를 더해 주었으며 이른바 인삼문화현상을 초래하였다.
인삼을 채취하면서 인삼이야기가 생겨났는데 일찍 1500년전부터
류전되기 시작하였다. 중국남북조시기 (송)류경숙은 <이원>(异苑)이란 고적에서 <인삼은
일명 토정(土精)이라 하는데 상당(上党)에서 나는것이 상등이고 사람모양처럼 생겼으며 어린이가 우는 모양인듯하다.>고 묘사하였다.<수서.오행지>에서도
이와 류사한 기재가 있었다.당나라시기에 이르러 사람이 <인삼정>(人参精)을 먹으면 매우 총명하게 변화하며 불로장생한다는 전설이
류전되였다.
이렇게 인삼은 력대로부터 진귀한 궁정공납품으로 되였을뿐만 아니라 민간전설속에서는 신비한
<인삼정>(人参精)으로 전해진다.이는 인삼의 신기한 특성을 리용하여 인삼을 인성화함으로써 대중들의 아름다운 소망을 이루게끔 이끌어가는 랑만적인 색채를 부여하는것이다. 백성들은 인삼을 <신초>(神草), <땅속의 정령>(地精),<초요>(草妖)라고 불렀으며 인삼에 특수한 예술적인 매력을 더해주었다. 민간에서 전해지고 있는 전설을 종합해보면 인삼은
<붉은 배두렁이(肚兜)를 띤 어린이>, <준수한 용모의 처녀>, <마음씨 착한 백수(白须)로인> 등으로 변신하여 신비스럽게 장백산의 심산유곡과 림해설원에 출몰하면서 이들의 신력과 지혜로 사람들의
소망을 이루게끔 인도해준다. 특별히 주목해야 할것은 인삼정에는 반면적인 인물이 매우 희소하며 또한 반면인물을 위하여 복무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의적 힘의 화신이며 대중들의 리상과 지혜의 체현인것이다. 이리하여 수천년간의 세월이 흐르면서 인삼은 숭배의
대상으로 되였으며 인삼을 얻는 것을 인생의 행복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2.채삼인들의 신령숭배
장백산지역의 채삼습속은 만족의 선조인 말갈과 녀진, 그리고 만족의 공동체가 형성된후에 발원하였고 청나라가 통치한200여년 력사기간에 채삼습속은 부단히 풍부해지고 발전하였으며
19세기부터 조선족, 한족 등 민족이 이주해들어옴에 따라 이들의 생활과
생산습속이 융합됨으로써 채삼습속으로 하여금 다민족의 신앙적인 색채가 다분히 담겨있게 하였다. 입산하여 채삼하는것과 그속에 담긴 신앙습속은 장백산지역 여러민족들이 공동으로 접수한 문화현상인것이다.
장백산지역의 신앙습속을 고찰해보면 그 주체는 만족과 한족이며 조선족의 신앙습속도 일정한
범위내에서 전해지고 있다. 어느민족을 막론하고 모두 어느한 신령에 대한 숭배사상이 존재하였던것이다. 만족이나 한족은 산신할아버지-로빠퉈(老把头)를 신령으로 모셨고 조선족은 예로부터 전승해온 신앙습속에서의 산신과 서낭신을 특별히
숭배하였던것이다.
중국에는 <어떤 업에 종사하면 그 업에 상응한 신을 모신다>는 습속이 있다. 장백산지역의 만족과 한족 채삼인들은 산신할아버지로 불리우는 <로빠퉈>를 특별히 숭배하여 왔다. 로빠퉈는 고대로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라 청나라의
강희황제 (康熙帝:1654년~1722년)통치후기부터 나타났다고 하는데 대략 18세기이다. 로빠퉈는 바로 채삼시조인 손량(孙良)을
가리킨다. <통화현지>에는 로빠퉈에 대한 기재가 있다. 장백산지역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로빠퉈에 대해 알고 있으며 로빠퉈는 채삼인들이 마음속으로부터 숭경하는 신이였다. 어떻게 보면 로빠퉈는 고대로부터 숭상해오던 장백산지역 산신령의 화신인것이다.
로빠퉈에 대한 이야기는 민간전설로 전해지고 있었는데 전설에 의하면 오래전부터 산동성 래양(莱阳)에 살고있던 손량(孙良)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인적이 없는 장백산에 와서 인삼을 캐게되였다. 길에서 장록(张禄)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여 그와 결의형제를 맺었는데 채삼하다가 서로 흩어지게 되였다. 손량은 장록을 찾기 위하여 산속에서 헤매면서 기아와 피곤으로 랄고하(蝲蛄河)와 통가강 (佟佳江:浑江-훈강)의 합수목에서 죽음을 당하게 되였다. 죽으면서
림우석 (临牛石)이란 돌판우에다 절명시 한수를 써놓았다. 즉 <고향은
래양이고 성씨는 손가이며 바다를 건너 채삼하러 왔다가 길에서 친형제를 잃었으며 랄고하를 거슬러 올라 찾아다니면서 사흘간 가재만을 먹으면서 헤매였지만
형제를 찾지 못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라는 내용이였다. 손량이 죽은후 그의 령혼은 그냥 장록을 찾아 헤매였으며 끝내 방추산에서 찾고야 말았다. 장록은 원래 천년인삼정(人参精)으로서 손량이 채삼하려는 신념이 견정하고 친구를 성심으로
대하는것을 보고 그를 신선으로 인도하여 <산신할아버지>, <로빠퉈>로 되게
하였으며 인간세상의 숭배를 받게 하였다. 신빈현의
왕청문(新宾旺清门)에서 방추산(棒槌山), 영걸포저수지 (英戈布水库), 통화현성(通化县城)을 경유하여 만만천 (弯弯川) 로빠퉈묘지에 이르는 길을 민간에서는 <인삼의 길>이라고 부르고 있다.
채삼인들이 입산하기전에 제일 처음하는 중대한 일이 바로 로빠퉈의 묘지나 사당에 가서 제를 올리는것이다. 로빠퉈의 묘지에서 멀리떨어져 있는 채삼인들은 자기절로 돌덩이 세개로 바위돌밑이나 나무구새통옆, 산비탈에다 로빠퉈의 묘지(속칭 산신묘라고 함)를 만들어놓고 붉은 천을 걸어놓으며 제사상을 차려놓고
분향소지하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로빠퉈에게 개안(开眼-인삼을 캐는것)하여 횡재하게 해줄것을 빌며 되돌아와서는 반드시 사례를 올린다. 로빠퉈한테 빈후 빠퉈(채삼군 우두머리)네 집에 가서 큰 사발로 술을 마시고 고기를 저며먹으며 이렇게 한끼를 잘 먹은후 이튿날에 산에 들어간다. 산에 들어와서는 먼저 행하는 것이 산신당(老爷府)을 수건하는것이다. 빠퉈는 움막을 지으려고 하는 곳에서 한그루의 큰 나무를 선택해서 도끼로 나무 밑둥부위에다 큰 홈을 파내고 붉은 천을 걸어놓는다. 방산인들은 <산신당을
지어놓으면 방산할때 복이 떨어진다>고 리해한다. 산신당을 만들어놓은후 빠퉈는 사람들을 인솔하여 로빠퉈묘지에서처럼 제를 올리고 일이 잘되기를 빈다. 산신당앞에다 사발과 저가락을 차려놓는데 이는 식사할때 로빠퉈가 먼저 수저를 드는것을 의미한다. 매일 산에 오르기전에 한번 빈다. 인삼을 캐게되면 산신당앞에다 방추포자(棒槌包子)를 올려놓고 제를 올린후에야 방추를 잘 건사해놓고 다시 산에 올라가 방산한다. 산 규칙을 어긴 사람은 산신당앞에 꿇어앉아 로빠퉈에게 사죄한다. 마다산(산에서
길을 잃는것)한 사람을 찾았을경우 산신당앞에서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리면서 로빠퉈가 보호해준데 대해 감사를 드린다.
인삼을 발견하면 로빠퉈에게 제를 올린다. 한뿌리나
한무더기를 발견하면 자그만한 사당을 만들어놓고 로빠퉈에게 제를 올리며 마혼울타리(麻魂圈子)를 벗어나려면 향불을 피우거나 우등불을 피우고 손수건을
던지는것으로 로빠퉈에게 방향을 제시해달고 빈다. 큰 인삼을
캐서 처리한후 인삼을 캔곳으로 되돌아와서 산에 사례를 표한다. 그 장면은
매우 굉장한데 로빠퉈에 대해 성심으로 례를 행한다. 먼저 폭죽을
한바탕 터뜨리고 연후에 로빠퉈사당앞에다 돼지대가리, 큰 수닭, 과자, 만두 등 제물을 차려놓으며 초에 불을 달고 종이를 태우면서 향을 피우며 빠퉈가 사람들을 인솔해서 세번 절을 올린다. 아울러 축을 읊는다. <산신할아버지-로빠퉈님, 당신의 대은대덕으로 우리들이 태평스럽게 방산하여 큰 인삼을 얻게 되였는데 성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들이 저그만한 성의를 표시하니 시종 잘 보호해주기를 부탁합니다.> 빠퉈는 술을 부어서 하늘과 땅 그리고 산과 강의 여러 신들에게 제를 올린다. 그런후에 모두들 모여서 음복한다. 산에서 내려온후 집에 돌아와 돼지고기를 먹는다.
매년 음력3월16일은 로빠퉈의 생일날이다. 이날은
방산인들의 중대한 명절일뿐만아니라 사냥군, 채벌군, 떼목군, 채금군
등 모든 산을 다니는 사람들의 공동한 명절이기도 하다. 이들은
공동으로 로빠퉈를 숭배한다. 이날이 되면 산을 다니는 사람들은 휴가를 하는데 집집마다
술상을 마련해서 로빠퉈를 위해 생일상을 차려준다.
조선족 역시 장백산지역의 주요한 주민이였다. 비록 19세기 중기부터 대량적으로 조선반도에서 이주해들어와 정착해 살았다고는 하나 사실 만족이 중원에 들어가
정권을 세운후 장백산지역이 봉금되였는데도 가만가만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장백산에 들어와 채삼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니
조선족은 장백산지역 채삼업의 한 성원이기도 한것이다. 조선족의
채삼습속에도 신령에 대한 숭배가 존재하는데 두가지 현상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조선족 고유의 산신숭배나 서낭신숭배가 그대로 전승된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변에 살고있는 한족이나 만족의 숭배대상인 <로빠퉈>를 신령으로
삼는것이다.
중국조선족의 민간신앙은 조선반도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장백산지역에 이주해 들어오면서 고스란히 그 습속을 계승하여 왔다. 그러나 한족이나 만족 등 기타 민족들과 공동으로 생존해오면서 그들의 신앙습속을 어느정도 수용하게 되였다. 즉 이주초기에는 조선민족 신앙습속을 기본상 그대로 이어나가다가 일정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주변민족들의
습관에 어느정도 물젖어갔던것이다. 이는 민속문화의 전승과 변이특점에 알맞은것이다.
조선족의 채삼인들은 보통 지신계통의 산신과 서낭신에 대해 많이 숭배해왔다. 산신은 산에 거처하여 산을 지키는 신인데 높은 산이나 경치가 좋은 산에는 령험있는 신이 존재한다고 여기고 어려운 일이 있을때마다 그런 신에게
제를 올리고 소망을 빈다. 서낭신은 일명 성황신이라고 하는데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취급하며 조선족이 특별히 숭배하는 신령이다. 중국조선족은
이러한 신들을 무척 숭배해왔지만 산신과 서낭신을 모시는 당집은 특별히 만들지 않고 큰 고목이나 큰 바위에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여기여 이런 곳에다
제물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고 소원을 빌었던것이다. 이리하여
조선족채삼인들은 채삼하러 떠나면서 마을의 수호신인 큰 고목이나 큰 바위 등에 찾아가 채삼하러 떠나는 것을 신에게 고하고 채삼군들의 안녕과 크고
많은 인삼을 캐게끔 해달라고 정성스레 제를 올리고 빈다.
2010년11월에 안도현의
<하늘아래 첫동네> 내두산촌을 답사하면서 수십년간 채삼과 사냥을 일삼아온 90여세 최석도로인을 방문하게 되였는데 이 마을 주민들이 채삼할 때 지내는 산신제사에 대해 료해하게 되였다.이 마을 채삼군은 보통 3-5명 혹은
십여명으로 구성되는데 입산하면서 경치좋고 평평한 곳에서 깨끗하고 훤칠한 큰 고목을 만나면 그 밑에다 제상을 차리고 산신제를 올린다고 한다. 제상은 매우 간단하게 차리는데 미리 닭한마리, 닭알 3개, 밥 한그릇, 술 한명을 준비해서 갖고가다가 제물로 차려놓는다. 제는 채삼군들의 인솔자가 주관하여 올리는데 술잔에 술을 부어놓은후 꿇어앉아 우선 자기 성명과 생일을
고하고 다음에 왜서 입산했는지에 대한 리유를 밝히며 끝으로 산신령님께서 많이 보살펴달라고 빈다. 그리고 큰 절을 세번 올리고 술잔에 부은 술을 제단 주변에 쏟아붓는다. 절을 할 때 다른 채삼군들도 함께 한다.
그리고 한족이나 만족이 숭배하는 로빠퉈를 신으로 모시고 제를 올리는 사례도 있는데 장백산지역에서 다년간 채삼을 해온 렴대환(남,1909년생)의 구술내용은 다음과 같다. <입산한후 주숙하는 초막을 짓고 첫 행사로 오방신이라 일컷는 ‘로빠퉈’(老把头)에게 고사를
지낸다. 큰 고목을 하나 선택하여 나무밑을 깨끗히 정리한뒤
큰 백지를 한장 펴고 그우에 냄비(작은 솥)로 밥을 짓은 것을 그대로 올려놓고 그 앞에 술잔을 5개 놓는다. 빠퉈(채삼군
우두머리를 호칭)가 앞에 꿇어 앉아 술을 다섯잔 따르고 냄비 뚜껑을 열고 저가락을 한쌍 꽂은후 ‘오늘 우리는 산삼을 캐려고 이곳에 왔으니 신령님께서 많이 점지하여 주십시요’하고 축을 고한다. 이때 다른 사람들은 곁에 서서 머리를 수그리고 있는다. 축을 고한후
빠퉈가 5개 술잔의 술을 모두 땅에 쏟아붓고 저가락으로 냄비안의
밥을 집어 동, 서, 남, 북, 중 5개 방향으로 뿌려 5방신선을 위로한다.>
지금에 와서는 상술한 신앙습속이 민간에서 그리 널리 고풍적으로 행해지지는 않고 있지만 그 리념만은 여전히 남아 있어 인삼캐기라 하면 숭엄하게
신령들을 떠올리군 한다. 그리하여 일단 입산하기만 하면 제물은 차려놓치 않지만
숙연히 머리숙여 신령들이 깃들어 있는 고목이나 바위에 묵례를 올리기도 하고 일이 잘 되게끔 해달고 말을 고하기도 한다.
3.인삼채집 속신행위와 금기
(1) 만족, 한족의 인삼채집속신행위와 금기
인삼캐기는 몇백년에 걸쳐 만족,한족들의 주요한 경제활동의 한가지였다. 장기간의 인삼캐기 생업활동을 통하여 이들 나름대로의
채삼풍속을 형성하였다.
인삼캐기는 <방추를 파내다-挖棒槌>혹은 <방산-放山>이라 일컬는데 채삼꾼들은 혼자 산에 들어가지 않고 3-5명혹은 11-13명씩 짝을 뭇는다.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기수(홑수)로 편성한다. 두사람이
짝을 무어 입산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민간에
전해지고있는 전설에 의하면 옛날 두사람(형제 결의형제
친구)이 함께 산에 들어가 큰 산삼을 발견했는데 그중 한사람이
돈에 눈이 어두워 같이 입산한 동료를 해치고 자기가 산삼을 혼자 차지했다고한다. 물론 남을 해친 사람에게도 좋은 끝장이 없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통하여 이외의 액운을 피하고저 하는 념원을 반영하였다. 우수(짝수)를 좋아하는 만족이나 한족들도 인원구성시 기수를 택하며 인삼을 한데 합하면 우수가 되기때문에 길하다로
믿었다.
이들은 채삼경험이 풍부하고 덕망이 높은 사람을 두목으로 추대하는데<빠퉈-把头>라 부른다.그 아래
인솔자를 <二把头>라 부르고 전체 성원들을 <边棍>으로 통칭하였다.입산하기 하루이틀전 인솔자가 성원들을 이끌고 <산신당-老爷府>(<老把头庙>라 부르는 사당 )에 가서 제를 지낸다.사당이 없으면 고목이나 바위앞에 신위를 모시고 제물을 차리고 향불을 피우고 지전를 태운다.그 다음 인솔자가 성원들을 이끌고 공손히 절을 올리고 입산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산신에게 일일히 고하고 산삼을 캐게해달고 빈다. 제사가 끝난후 함께 음복한다. 입산시 좁쌀을 지고 사슴뼈막대기, 나무지팽이(사람키보다 좀 작고 껍질을 벗기지 않음), 손칼 ,붉은색 실 ,돈잎 등 물건들을 갖고 간다.
입산하기 전에 반드시 황도길일을 택해야 한다. 민간에는 <무엇을 얻으려면 삼륙구가 좋고 횡재하려면 3개의 8, 륙륙대순-六六大顺이 좋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방산하는 사람들은 입산할때 모두 3,6,9혹은 초8일,18일,28일 등 날자를 선택하는데 이런 날은 길한 날이고
입산하면 반드시 횡재할수 있으며 순리롭게 산에서 돌아올수 있다고 인정하였다.
움막을 지은후 밤에는 우등불을 피워놓다. 우등불이 왕성할수록 좋다고 하며 <불이 활활 타올라야 재(柴-财)가 왕성해진다.>고 한다. 우등불은 반드시 빠퉈가 지펴야하고 날이 어두워져도 방산인들이 돌아오지 않았을때만이 밥짓는 사람이 지핀다. 태우는 장작은 아무데나 버리거나 무져놓아서는 안되며 일정한 순서로 차곡차곡 쌓아놓아야 한다. 불길속에 아무 물건이나 집어넣어서는 안되고 불길속에 오줌을 싸서는 안되며 불길을 향해 불길한 말을 해서는 안되고 불길속에 다른 물건을 태워서는
안된다. 우등불을 피우는 규칙은 만족사람들이 불신을 숭상하고 제사 지내는 데서 비롯된것이며 방산활동에서 이
습속을 활용한것이다. 만족은 일월성신, 산천강하 (山川江河),천지수화(天地水火)를 숭상한다. 특히는 불신을 숭배하며 불신은 사람들에게 광명, 따뜻함,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여기였다. 해마다 샤만을 청하여 불신에게 제를 올린다. 불신에게 제를 올릴때 우등불(륭중한 불신제사의식은 화지 달리기-跑火池-이다.)을 피우고 금기해야 할 여러가지 규칙을 세우며 이로써
불신에 대한 숭경의 뜻을 표한다. 후에 만족들은 수렵과 방산(인삼캐기를 하는 하는것)활동에서 우등불을 피울때 이러한 규칙을 응용하였으며 줄곧 지금까지 계승해 내려왔다.
입산해서 마음대로 지껄이를 못하며 매 사람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횡대로 앞으로 휩쓸어
간다. 누가 먼저 인삼을 발견하면 <방추>(棒槌)라 소리지른다. 인삼을 발견하는것을 민간에서는 <开眼>(눈앞이 활짝 열린다는 뜻)이라 한다. 이어서 인솔자가 한그루의 홍송나무를 선택하여 인삼을 향한 쪽면의 나무껍질을 장방형으로 벗긴후 칼로
두 줄의 칼자욱을 내는데 좌측엔 채삼군인수를 새기고 우측엔 산삼의 년륜을 새긴다. 여럿은 인삼포기주위에 몰려오는데 인솔자가 인삼을 파낸다. 먼저 돈잎을 꿰맨 붉은색실을 인삼잎에 휘감는데 이는
인삼아기가 도망치지못하게 묶어놓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좌우에 막대기를 꽂고 실을 고정한다. 인삼둘레를 크게 판후 사슴뼈로 인삼의 작은 뿌리들을 움직여 놓으며 풀뿌리나 나무뿌리를 만나면 손칼로 잘라버린다. 인삼뿌리가 완전히 드러난후 이끼풀을 감아서 천천히 잡아당겨 파낸다. 이끼풀, 봇나무잎, 원자리흙으로 인삼보따리를 만드는데 방추포자라 한다. 큰 인삼은 인솔자가 지고 작은 삼은 아래사람들이 메고간다.
(2)조선족의 인삼채집풍속에 나타나는 속신행위와 금기
채삼계절은 매년 7월, 8월, 9월로 잡는데 매달 3일, 13일, 23일은 입산을 못하는 기일이다. 다른 날에도 점을 쳐서 길일을 택하여
입산한다. 입산한후에도 매달 초하루와 보름날에는 삼을 캐지 않고 막안에서 휴식한다.
입산할 때 반드시 목욕재계를 해야 하며 식량과 송곳, 사냥칼, 마대 (나무막대기) 같은 도구를 준비해 가지고 간다. 송곳은 쇠로만든 것을 사용하지 않고
노루뿌리를 사용한다. 채삼꾼들은 혼자 산에 들어가지 않고 3-5명혹은 11-13명씩 짝을
무어 입산한다. 이들은 덕망이 높은 사람을 인솔자로 선발하여 계획적으로
채삼한다. 장백산일대의 조선족들도 인솔자를 <빠퉈>라 부르기도
하였다.
인삼캐는 사람은 반드시 남자여야 하며 남자들이 인삼채집을 떠날 때 녀자가
앞을 가로 지나서는 안되며 녀자가 가로지나갔다면 채삼을 중지한다. 이는 아마 음기가 양기를 치면 재수없다고 리해해서 일것이다.
입산하면서 큰 고목이나 바위를 만나면 인솔자의 지휘하에 제를 지내는데 갖고간
간단한 제물을 차려놓고 순리롭게 산삼을 캐게 해달라고 정성스레 빈다. 입산할때 매사람이 나무막대기 하나씩 휴대하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걷는데 수시로 나무막대기로 소리를 내여 규정된 신호를 보내며 걷는 간격을
늘이거나 좁인다.
인삼을 찾으면서 산열매 같은 것을 보아도 따지 말아야 하며 음탕한 말을
주고 받지 말아야 한다. 만약 어떤 일에 부딪치면 나무막대기로 나무줄기를 쳐서
소식을 전해야 하지 큰 소리로 불러서는 안된다. 몇시간이
지난후 여러 사람들이 모여 앉아 그 전날 꿈이야기를 한다. 만일 누가
꿈에 인삼선녀를 보았으면 아주 좋은 징조라고 한다. 인삼을
발견하면 <방초야>
혹은 <삼밨다>라 소리친다. 그러면
모두가 모여서 정성스레 인삼을 파내는데 한가닥의 수염뿌리도 떨어지지않게 한다.
상술한 인삼채집풍속에서 장백산지역의 여러민족의 신앙습속은 공동점을 갖고
있으면서도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수있다. 특히 신령숭배대상이
일정한 차이를 보이지만 입산한후 신력이 깃들어 있는 매개물은 고목이나 바위를 향해 제를 올리는것은 일치한것이다. 그리고 인삼채집과정에서 동아리를 뭇거나 인삼을 발견하고 캐는 절차는 기본상 같으며 그 속신행위와 금기도
일치하면서도 제 나름대로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새천년에 들어서서 장백산지역의 안도현, 무송현, 통화시
등곳에서는 인삼문화 축제를 널리 벌리면서 사그려졌던 신앙적인 내용들을 현시하였다. 길림성 안도현 제1회장백산복만(福满)구산삼캐기문화관광절이 2007년8월 18일, 안도현 복만생태구에서 펼쳐졌다. 생태구내 삼림공원의 수목이 뒤덮인 깊숙한 골과 산자락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귀중한 산삼을 캐는 산삼캐기체험은 마음에 새겨둘수 있는 즐거움을 주었다. 이번 행사는 안도현의 특색문화를 남김없이 보여주었으며 안도장백산인삼과 특색관광브랜드를 만들어내며 중국의 인삼문화를 일층 보급하고 《장백산제1현》으로 불리우는 안도현의 형상, 더 나아가서 장백산지역의 생태문화를 홍보하는데 크게 일조하였다.